Dialog with FWR Gallery Berlin
오늘 우리는 한국인 작가 지나 박의 첫 개인전 FRAGMENTED EDEN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이번 전시는 2024년 9월 POSITIONS Berlin에서 진행된 지나 박의 솔로 프레젠테이션에 이어, 서울에 위치한 THIS WEEKEND ROOM 갤러리와의 협업을 통해 열리게 되었습니다.
전시 제목은 “조각난 에덴”입니다. “에덴"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 에덴이 어떻게 그리고 왜 “파편화”되었나요?
Jina Park:
나의 작업에서 개인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다.
우리는 현재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편견, 혐오와 배척, 더 나아가 분쟁 ,전쟁의 상황에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미시적인 개인으로서는 다민족이 공존하며 살고 있는 베를린에서 각각 개인의 세계는 매일 부딪힌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서로 다른 행동 방식간의 투쟁, 즉 문화를 획득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공존한다. 무엇이 단일종 인간을 구별짓고 있는가.
Fragmented Eden 은 이러한 세계를 은유한다.
에덴은 종교적으로 기독교를 상징하고 있지만, 나의 에덴은 기존 질서를 만들었던 지배 이데올로기를 은유한다. 어떠한 강력한 믿음들이 서로를 오해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살고 있는 세계, 그안의 구성원, 그들이 믿는 종교, 정치적 신념, 모든것들이 부딪힌다. 다시 그것들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를 쫓아 가다보면 결국 나 개인은 어떻게 구성되어지는가 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내가 찾은 것은 “취향” 이라는 것이다.
취향이야 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사람에게 의미 할 수 있는 모든것의 원리 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된다.
취향은 내면의 깊은곳에서 흔쾌감과 혐오감, 공감과 반감, 환상과 공포증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계급의 무의식적 통일성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에 균열이 갔다. 우리는 에덴을 포기하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간다.
당신의 작품 세계는 이국적인 동식물들로 가득합니다. 시선은 양치식물, 야자수, 선인장의 다양한 초록빛 잎사귀 속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최근에는 작품 속 공간이 광활한 사막 풍경으로 열리며, 먼 산맥이나 유명한 일본의 후지산 정상과 마주합니다. 전체적인 장면 속에서 긴팔원숭이, 플라밍고, 표범, 뱀이 까마귀, 은여우, 두루미와 동등하게 존재하며 움직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동식물의 세계가 당신의 그림에서 어떻게 이토록 평등하게 공존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Jina Park:
위에서 언급한 취향에 대한 고민은 분더캄머(Wunderkammer, 호기심의 방) 개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였다. 캔버스의 프레임 안쪽은 내가 직접 방문하거나 리서치를 통해 수집한 이미지들로 구성된 나만의 분더캄머 이다. 이 공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들은 각기 다른 기후와 서식지, 생태계에서 진화 되었지만, 그들은 나의 의도에 의해 선택되고 캔버스 안에 갇혀 있다. 이들은 모두 “내가 소유하고 싶은” 오브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이미지들은 각각의 독특한 서사를 창출합니다.
그림에서 내가 강조하는 공존의 방식은 동양화의 ‘이동시점’ 이라는 고전 퍼스펙티브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동양화의 이동시점
동양화에서의 이동시점은 전통적인 서양화에서처럼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풍경을 감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시점을 동시에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이는 관람자가 그림 속에서 이동하면서 다양한 시점에서 장면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선은 고정되지 않고, 화면을 따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시각적 자유가 주어지며, 관찰자는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기며 화면 속의 여러 부분을 다양한 시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법은 그림 속의 내용과도 연결되며, 관객의 문화적 배경과 개인적 취향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서사가 가능하도록 그림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각 관찰자는 자신의 시선과 관점을 통해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세 가지 포지션: 보물, 수호자, 약탈자
이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나는 그림 안에 세 가지 포지션을 설정했습니다: 보물,수호자, 그리고 약탈자 입니다.
1. 보물: 이 공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 혹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오브제들입니다. 이들은 내가 소유하고 싶거나 보호하고 싶은 대상이 됩니다.
2. 수호자: 이 보물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수호자는 보호자이자, 이 소중한 오브제를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자로 상징되며, 그 역할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약탈자: 보물을 소유하려는 자, 혹은 그 가치에 매료되어 그곳에 들어온 존재입니다. 약탈자는 이 세계를 침범하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행동의 주체입니다.
이 세 포지션은 각각의 역할과 의미를 통해 그림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생성하며, 관람자는 자신의 시각과 해석에 따라 보물, 수호자, 약탈자의 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작품은 고정된 해석을 넘어서, 관객의 문화적 배경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게 됩니다.
당신의 최신 작품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은 중요한 모티프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야생동물들과 비교해 볼 때, 말은 길들여진 동물로 여겨집니다. 인간에게 말은 가축이자 탈것으로 사용됩니다. 말은 당신의 작품 세계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나요?
Jina Park:
오브제를 선정할때 그림안에서의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서사나 내용을 염두해 두고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 했듯 말 또한 내가 소유하고 싶은 오브제 중 하나입니다. 다만 최초에 흥미는 아마도 동물원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 길들여져 있고 사용되어 짐에도 또한 갇혀있는 상황을 보는 부조리 였을 것이다.
POSITION 미술 박람회에서 당신의 대형 회화 작품 "Space Oddities"는 관객들에게 큰 매력과 흥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국적인 식물들의 짙은 잎사귀 속에서 세 마리의 동물이 등장합니다: 저어새, 원숭이, 그리고 뱀입니다. 이 세 주인공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작품 제목 "Space Oddities"는 무엇을 암시하나요?
Jina Park: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3가지 포지션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 전시들을 통해서 재밌는 관찰이 포착되었다. 사람들이 도상해석에 있어서 각자가 무엇을 믿느냐 (비단 종교적 영역 뿐 아니라) 에 따라서 혐오와 찬사가 동시에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뱀은 혐오의 대상이어서 그림에서 빼 달라는 요청을 한다던가…누구는 새에 대해서 공포를 가지고 있어 갖고 싶지 않다던가.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뱀이 아담과 이브의 에덴을 파괴한 부정적인 도상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뱀은 불교에서는 수행자를 수호하는 수호자 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에서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신성한 존재로도 인식 됩니다. 세상을 선악으로 구별하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도상을 해석할 때와 선악의 구별이 없는 불교 세계관으로 도상을 해석하면 그림은 전혀 다른 그림이 됩니다.
이렇듯 우리가 도상을 해석하면서 느낄 수 있는 여러 방향성은, 나 개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혹시나 어떠한 권력이 되어 우월과 열등, 찬사와 혐오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게 된다.
당신의 회화 작품은 다양한 인간 문화에 대한 언급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위풍당당한 자세로 앉아 있는 아시아인 기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눈부신 흰색 조각들, 그리고 이집트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또한 아랍 아라베스크의 인용이 포함된 건축 요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용은 점점 단순화되고 이분법적 사고로 치닫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 대한 현재의 논쟁에 대한 성명인가요? (Jens Balzers의 저서 “After Woke” 참조)
Jina Park: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나의 작업을 이해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론 중 하나이다.
나는 한국에서 전통 한국회화를 전공 하였다. 당시에 서양화를 공부하는 학생들과는 달리 우리는 전통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있었고,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나왔었다.
한국은 1910년부터 45년까지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었고, 그 시기에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해서 수많은 전통이 단절 된 경험이 있다. 이것은 문화 전반에 일어났고, 특히 전통회화는 치명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렸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를 겪으면서 한국전통회화의 담론은 또다시 유럽중심주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반복 하였다.
분더캄머는 뮤지움 이라는 개념이 발생하기 이전의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 뮤지움의 기능은
무엇보다도 낯선 문화와의 만남을 제공하고,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학문적 기술적 문명화 와
세계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명화 와 세계화 과정에서 다른 문화에 대한 많
은 오해들 역시 발생을 한다. 특히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오해들에 주목을 해 볼 수 있다.
유럽의 미술비평이나 미술사안에서 제3세계 작가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환상적이어야 하며, 다른 사람과 같지 않거나 프리다 칼로 처럼 보여야 한다 등의 요구를 받는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소통문제에서 드러나는 유럽중심주의 시각으로서, 현대의 미술개념이 서구문화의 산물이며 서구 이외의 지역의 작가들에게 항상 딜레마를 안겨 준다. 서구 이외의 작가들은(결코 유럽의 본보기만큼 우수할 수 없는) ‘파생적’제작이거나 타자성을 보여주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독일에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아시아적인것에 대한 강요들을 종종 느끼곤 하였다.낯선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카테고리화를 통한 구별을 함으로써 아마도 편안함을 느끼는듯 하다. 하지만 이러한 카테고리화 과정 안에서는 지배 문화와 대항적 문화가 발생을하는데, 지배적 문화는 대항적 문화를 미세하게 규제하고 관리하는 양상을 띤다. 우리는 카테고리화 라는 권력을 미세하게 행사하고 있고 반은 무 반성적으로 지배적 카테고리를 승인하게 되는데, 이러한 카테고리화는 늘 다양한 배제 현상 차별 현상과 공범 관계가 될 가능성에 노출 되어있다.
나의 분더캄머는 이러한 딜레마들을 밑바닥에 깔아 놓았다.
단순히 두 문화가 섞여서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 진다고 믿는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매우 복잡 미묘한 권력구조가 존재 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혼성화라는것은 동일한 조건을 전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조건이란 아마 서로의 존중을 의미 할 것이다.
문화적 정체성은 고정되어있지 않고 항상 변한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만나고 충돌하고 교섭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 되어야 한다.
당신의 회화는 사물들의 절대적으로 동시적이고 평등한 존재감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콜라주 기법과 에이템페라 회화 기법을 사용한 것에 기인합니다. 당신은 언제부터 이러한 방식의 회화 작업을 해왔으며, 그 매력은 무엇인가요?
Jina Park: 독일로 유학을 왔을때 첫번째 나의 과제는 나에게 맞는 재료를 찾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한국 채색화를 전공하고, 그 매력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학을 와서 우연히 라이프찌히에서 에그템페라를 배울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이 채색화와 매우 유사 하였다. 종이와 캔버스, 미디움 차이 외에 프로세스는 매우 비슷하다. 아마 둘다 동굴벽화에서 진화된 재료의 특성이 남아있는것이 아닌가 싶다. 에그템페라의 매력은 일단 매트한 부드러운 표면의 표현일 것이다.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느리고 고단하지만, 레이어들이 쌓아져서 만들어내는 색의 깊이는 다른 재료들과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색 보존력 또한 채색화와 마찬가지로 매우 견고 한것도 커다란 매력중 하나이다.
당신은 객체와 개인, 소유와 권력 간의 특별한 관계를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모든 소유는 비물질적이 되어버렸습니다. 디지털 사용권의 형태는 한때 존재했던 "사물들"을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이게 합니다. 이러한 비물질적인 "사물들"은 주식, 비트코인, NFT로서 여전히 전송 가능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가상의 "사물"들이 가지는 덧없음과 비물질성이 당신의 회화 및 관람자와의 대화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Jina Park:
내 작업에는 내가 직접 수집한 이미지들과 종종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모은 이미지들이 뒤섞여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저렴한 이미지는 나에 의해 선택되고, 캔버스 위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하며,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누군가의 컬렉션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이미지는 다시 가상 디지털 공간 속을 떠돌며,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선택될 것이다.
18, 19세기 분더캄머(Wunderkammer)는 서양의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소개되었고, 중국을 거쳐 한국, 당시 조선에까지 전해졌다. 당시 조선의 왕 정조는 책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백성들이 책과 가까워지길 바랐다. 그래서 화가들에게 책을 그리게 했는데, 우리는 이를 '책가도(冊架圖)'라 부른다. 그 시절 분더캄머는 책가도 그림에 많은 영감을 주었고, 화가들은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브제들을 그림 속에 그려 넣으며, 전통 한국화에서 새로운 시각적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책을 살 수 없었던 서민들에게 이 책 그림은 과시적 욕망과 지적 허영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되어 널리 퍼져 나갔다. 이는 지적인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와 분더캄머의 개념과 연결된다. 여기서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사람들이 그려진 물건을 소유하는 방식이었다.
분더캄머가 책가도에 영감을 주었듯, 책가도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과정은 다시 분더캄머와 연결되었다.
이처럼 문화는 한 사회에서 다른사회로 이동하며 유기적 서로 영향을 미치며 흐른다. 다양한 문화가 만날때, 완전히 새로운 혼성이 벌어진다. 이는 단순히 문화가 더해지는것이 아니라, 각 문화의 특성들이 새로운 맥락 속에서 상호작용 하여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 환경은 더욱 글로벌화 된 세계에서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포스트콜리니얼 관점에서 보면, 식민주의와 같은 권력 관계는 문화의 순환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식민주의는 문화적 전파의 비대칭성을 가져오면서 한쪽 문화가 다른 문화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양상을 띠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피지배 문화가 저항하고 재구성되어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현상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의 순환은 권력 관계 속에서의 문화적 저항과 재구성이 포함됩니다.
예술은 과거나 현재나, 디지털 세계나 현실세계나, 인간에 의해 기억되진다. 이는 결국 서로 유기적으로 단단히 엮여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 시킬것이다.